매출 1000억 돌파… 염료업계 독보적 선두
아버지는 적시타를 날렸고 아들은 구원 등판했다. 염료를 수입에 의존했던 시절, 고교 화학교사 출신인 아버지는 염료 국산화를 위해 기업을 세우고 업계 1위로 이끌었다. IT업계 전문 경영인으로 일했던 아들은 염료업계 위기 속에서 허우적대던 업체를 살려냈다. 지금은 연매출 1000억원대 기업으로 우뚝 세웠다. 창업주 김동길(71) 회장과 그의 장남인 김흥준(42) 대표이사 부회장이 이끄는 경인양행 이야기다.
경인양행은 창업주가 2세에게 주식을 증여하거나 헐값에 넘기는 식으로 가업을 승계하지 않았다. 전문 경영인 출신 2세가 별도 사업을 하며 저축한 종잣돈으로 지분을 매입해 최대 주주에 올랐다. 우리나라 산업계에서 보기 드문 경우다. 경인양행 스토리를 듣기 위해 13일 서울 염창동 본사에서 김 부회장을 만났다.
김 부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기업 물려받을 생각하지 마라’고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경인양행은 1971년 출발한 국내 염료업계의 독보적 1위 업체. 85년 100만 달러, 87년 200만 달러, 88년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쌓아올리며 급성장했다. 김 부회장이 대학생일 때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기업이 부쩍부쩍 커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버지 가르침에 따라 다른 분야 사업을 꿈꾸며 보냈다.
경인양행은 2001년 중국투자법인을 설립했고,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에 의해 부품·소재 수출 선도기업으로 선정됐다. 2002년 5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뒤 몇 년간 침체기에 빠졌다가 지난해 7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현재 40여개국에 염료 등을 수출하고 있으며 매출의 70%가량을 수출로 벌어들이고 있다.
경인양행이 재도약, 침체, 회복세를 겪는 동안 김 부회장은 IT업계에서 잘 나가는 기린아였다. 95년 친구들과 함께 나모인터랙티브를 설립해 공동대표로 일했다. 나모웹 에디터를 만든 회사다. 2003년 엔씨소프트 사업총괄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엔씨소프트는 글로벌 온라인게임업계 선두권 업체.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기업들의 지휘 라인엔 그가 있었다.
이런 화려함을 뒤로 한 채 2005년 경인양행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경인양행은 혼수상태에 가까웠다. “뚜껑을 열어보니 운명이 얼마 안 남은 회사 같다는 생각에 아찔했습니다. 차라리 사업을 정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죠.”
김 부회장은 경영에 참여하면서 김 회장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회사에선 전문경영인으로 대해 달라는 것이었다. “예스맨(Yes Man)이 되지 않겠다는 뜻이죠. 다른 사람들은 회장님 의견에 반대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저라도 반대해야, 아니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기업이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는 “사업에 100점짜리 정답은 없다”며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 만큼 다른 경우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하자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김 회장은 약속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우리 경제에 필요한 원료를 생산하는 기업을 운영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고 한다. 아들이 경영인으로서 회사를 다시 도약시키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단순한 대물림이 아닌 전문경영인 영입 효과를 보고 싶은 마음도 강했던 것이다.
메스를 든 김 부회장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시 짰다. 경인양행 사업 부문은 비용으로 보나 인력 구성으로 보나 레드오션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었다. 블루오션 중심으로 사업 영역을 고르게 재구성한 뒤 사업부별 책임제를 강화했다. 회사는 회생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전자재료 분야에도 진출하면서 매출액 1250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매출액이 1000억원을 넘은 건 처음이었다. 수출탑 트로피도 6년 만에 다시 받았다. 올해 매출액도 지난해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공을 아버지 덕분으로 돌렸다. 사업 영역을 다각화한 건 김 부회장이지만 기업의 기초 체력을 다진 건 김 회장이라는 설명이다. “경인양행은 기술력에 승부를 거는 업체입니다. 요즘도 연구·개발(R&D) 인력은 교사와 연구원을 거친 회장님이 직접 선발하십니다.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키웠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던 거죠.”
김 부회장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로 더 뻗어나가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